"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찬미예수님
새로 시작하는 올 한해의 사목방침은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침묵이란 그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하시오' 라는 말이 입을 닫고 나서지 말며
한쪽 구석에 가만 있으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말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침묵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는가 하면,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침묵이 깨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가정을 떠올리면 화기애애한 활력보다 왠지
모를 무거운 침묵이 느껴집니다.
아기가 누워있는 말구유
아기를 나귀에 태우고 떠나는 이집트 피난 길,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열 두 살짜리 아들을 찾아낸 성전
장면 장면마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흐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 함께 하는 자리에는 항상 주변을 압도하는 무거운 침묵이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셉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의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마태오 1.19~20)
언제 그들에게 가벼운 분위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감히 어떤 언어도
침투할 수 없을 것 같은 정적을 느낍니다. 세상의 온갖 소음과 잡음을
삼켜버린 듯한 고요,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이라면 역설적이게도 이런 침묵
이런 고요 때문입니다. '내' 소리가 개입할 여지없이 서로의 인생을
하느님이 지으신 그 밑바닥으로 부터 읽고, 말없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시는지를 헤아리며, 고요 가운데 서로에게 귀기울이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기다리는
그 분위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친가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원천적인 삶의 자리가 성전이라면 우리에게 침묵
고요함은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런한 침묵은 그저 입 다물고 있는 자세일 수도 없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한 걸을 물러나서 방관하는 자세일 수도 없습니다.
서로를 향하는 가운데 형성된 분위기, 몸짓,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침묵은 더 이상 신뢰와 평화를 깨트리는 세상의 시끄러운 잡음이 자리 할 수 없고
더 이상 성과속, 가난과 부, 명예와 굴욕 등을 따지는 '나의 소리가 있을 수 없기에
평화를 머금은 고요함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정화된 언어, 하느님과 대화하는 언어로 적용하게 됩니다.
그 정경하고 고요한 시간돠 공간에서 우리 각자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을 올리는 입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워진 내 몸의 지체를 통해 우리들의 새로운 기도가 울려퍼지는
한 해이기를 희망하고 발돋움 합시다
2024년 1월
칠원봉당 주임신부 전주홍 요셉